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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악마, 그 경계에서, 영화 ‘사바하’ 리뷰

by 옆으로보는세상 2025. 2. 27.

한국 영화에서 오컬트와 스릴러를 결합한 작품은 꾸준히 등장해왔다. 검은 사제들(2015), 곡성(2016)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적 색채가 짙은 미스터리 스릴러는 관객들에게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사바하(2019) 또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작품으로, 불교적 세계관과 미스터리 스릴러의 요소를 결합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영화는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파헤치는 한 목사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현실과 신비의 경계를 넘나든다.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신념과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만들어내는 파장까지 깊이 있게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글에서는 사바하의 이야기 구조, 인물들, 연출의 특징, 그리고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분석해본다.

 

1. 미스터리의 시작: 두 아이의 출생

영화의 첫 장면은 한 외딴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다. 한 여인이 쌍둥이를 출산하는데,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달랐다. 언니 금화는 선천적으로 기형적인 몸을 가지고 태어나 집안에 갇혀 자라게 되고, 동생은 평범한 삶을 산다. 가족들은 금화를 두려워하며 그녀를 집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금화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한편, 영화는 박목사(이정재)의 시선을 따라 또 다른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그는 다양한 사이비 종교를 조사하는 인물로, 신흥 종교 ‘사바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사바하’라는 단체는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종교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수상한 점이 많다. 영화는 초반부터 금화의 이야기와 박목사의 추적을 교차 편집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 두 개의 스토리는 처음에는 별개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점차 하나로 엮이며 관객들에게 강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특히 금화의 존재가 단순한 기형아가 아니라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암시되면서, 그녀가 어떤 운명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2. 박목사의 추적과 사이비 종교의 실체

박목사는 오랜 기간 동안 사이비 종교를 연구해 온 인물로, 여러 종교 단체를 조사해왔다. 그는 특정한 종교적 신념이 어떻게 사람들을 조종하고, 때로는 비극적인 사건을 초래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의 새로운 조사 대상이 된 ‘사바하’는 기존의 종교 단체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그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사바하’의 교주는 기적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신도들에게 강한 믿음을 강요하고 있다. 특히, 이 종교와 관련된 사람들 사이에서 실종 사건과 의문의 살인이 발생하면서, 박목사는 단순한 종교적 현상이 아니라 범죄와 연결된 거대한 음모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그는 사슴동산이라는 집단을 알게 된다. 이곳은 겉으로 보기에는 불교적인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 단체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신도들은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며, 교주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모습이 점차 공포감을 조성한다. 박목사는 ‘사바하’가 단순한 종교 집단이 아니라, 특정한 존재를 부활시키려는 위험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3. 금화의 존재와 운명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은 아이’로 불린 금화는 가족들조차 그녀를 두려워하며 집 안에 가둔다. 그녀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의 감각에 의존해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단순한 불행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그녀의 몸에는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으며, 그녀를 찾으려는 이들과 그녀를 없애려는 세력들이 끊임없이 대립한다.

박목사의 조사가 진행될수록 금화와 ‘사바하’ 종교 집단 사이에는 뗄 수 없는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금화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종교적 신념 속에서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를 죽이려는 세력과 보호하려는 세력, 그리고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던 숨겨진 힘들이 얽히면서 영화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영화는 금화의 존재를 통해 인간이 가진 두려움과 맹목적인 믿음이 어떻게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금화는 단순한 희생양이 아니라,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놓인 인물이며, 그녀의 선택이 영화의 결말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4. 예언과 운명, 그리고 신앙의 그림자

영화 속에서 ‘사바하’ 종교 집단은 단순한 사이비 교단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예언을 믿고 있으며, 그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준비해 왔다. 바로 ‘악마가 태어나고, 그 악마를 막기 위해 신의 존재가 깨어난다’는 것이다. 이 예언 속에서 금화는 악마로 간주되며, 그녀를 없애야 한다는 신념이 ‘사바하’의 행동을 이끈다.

하지만 영화는 신과 악마, 선과 악의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지 않는다. 종교적 믿음이 사람을 구원할 수도 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면 광신으로 변질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사바하’의 신도들은 자신들의 신념이 선한 것이라고 믿으며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다. 반면, 박목사처럼 종교를 분석하는 입장에서도 인간의 신앙이 때로는 미신과 공포를 기반으로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영화는 믿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운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질문한다. 금화는 정말 예언된 악마일까, 아니면 단순한 희생양일까? 박목사는 이 모든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영화는 종교적 신념과 운명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사색을 요구한다.

 

 

5. 박목사와 금화, 두 인물의 대조와 공통점

박목사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종교를 믿지 않고 오히려 사이비 종교를 비판하는 인물이다. 그는 사이비 교주들의 수법을 연구하며, 그들의 실체를 밝혀내는 일을 한다. 반면, 금화는 종교적 신념과 얽힌 운명을 타고난 존재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아왔다.

처음엔 전혀 다른 길을 걷던 두 인물은 사건이 진행되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박목사는 금화의 존재가 ‘사바하’ 사건의 열쇠라는 것을 깨닫고 그녀를 보호하려 한다. 그리고 금화는 박목사를 통해 자신이 단순한 희생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둘의 관계는 단순한 구원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아니다. 금화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 하고, 박목사는 처음엔 냉소적이었지만 금화와 얽히며 점차 자신의 신념에도 균열이 생긴다. 서로 다른 출발점을 가진 두 인물이 하나의 사건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은 영화의 중요한 감정적 중심을 이루고 있다.

 

 

6. 현실과 초자연의 경계

‘사바하’는 종교적 색채가 강하지만, 단순히 종교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현실을 혼합해 긴장감을 유지하며, 관객들에게 ‘과연 우리가 믿는 것이 진짜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금화는 분명 신비로운 존재지만, 그녀가 정말로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과 인간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상징적인 존재인지 명확하지 않다. 박목사는 이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영화는 점점 그의 신념조차 흔들리게 만든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금화의 능력과 ‘사바하’의 실체가 밝혀지며 현실과 초자연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과학과 종교, 이성과 신념이 충돌하는 순간, 관객들은 영화 속 사건을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로 볼 것인지, 혹은 실제로 신비로운 힘이 개입된 이야기로 해석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7. 결말과 여운: 인간이 만들어낸 신과 악마

영화의 결말은 명확한 해답을 주기보다는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금화의 운명이 결정되고, ‘사바하’의 음모가 밝혀지지만, 영화는 단순한 권선징악으로 끝나지 않는다.

금화는 끝까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 하고, 박목사 역시 그 과정에서 변화를 경험한다. 하지만 그들이 내린 선택이 정말 올바른 것이었는지는 관객들에게 남겨진 질문이다. 우리는 악마를 두려워하지만, 때로는 그 악마를 만들어낸 것이 인간의 믿음과 두려움일 수도 있다.

영화는 종교적 신념이 가진 힘과 위험성, 그리고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신과 악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긴 여운을 남긴다. 신념이 우리를 구원할 수도,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영화 리뷰를 마치며

사바하는 기존의 종교 스릴러와 차별화된 설정과 분위기를 지닌 작품이다. 탄탄한 미스터리 구조와 충격적인 반전, 그리고 불교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철학적 메시지가 결합되어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완벽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스타일과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지닌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다. 사이비 종교, 신념, 운명과 같은 주제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경험해볼 만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